반도체장비 50개 개발…세 계 톱10으로 최근 `플립 칩 본더` 개발 한 덕에 스마트폰 사진촬영 속도 빨라져
"작은 회사지만 나는 국가 대표다." 1980년대 초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(75)은 홍콩, 일본, 말레이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반도 체 전시회에 참석하며 이 같은 각오를 다졌다. 그가 3t짜리 장비를 비행기에 싣고 세계 각지를 누비던 그 시절은 한국에서 반도체 시장이 막 형성되던 때였다. 전시회에 참가한 한국 업체는 으레 한미반도체 하 나뿐이었다. 매번 혼자서 외로이 전시장을 찾아다녀야 했던 곽 회장은 한미반도체 부스에 내건 태극기를 보며 엄청난 감회에 젖었다 고 당시를 회상한다. `기업 발전에 앞서 국가 발전에 공헌한다`는 곽 회장의 경영신조는 이 같은 과정에서 태어났다. 그는 "국가를 대 표해 정말 좋은 기계를 만 들자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"고 말했다.
이 같은 의지와 불굴의 노력 덕에 아무도 눈여겨봐주지 않던 한미반도체는 오늘 날 한국은 물론 세계를 대 표하는 반도체 장비업체로 성장했다.
반도체 장비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던 지난해에도 2000억원 가까운 매출(1758 억원)과 10%가 넘는 영업이익률(영업이익 176억원)을 올렸다. 매출 80%는 해외에 서 거둔다.
한미반도체는 1980년 3월 설립됐다. 설립 당시 이름 은 한미금형. 창업자 곽 회 장이 `반도체 초정밀 금형기술 국산화`를 목표로 세 운 회사였다. 2002년 10월 지금의 상호인 한미반도체 로 사명을 변경했고, 2005 년 7월 주식을 상장했다. 곽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오로지 반도체장비만을 연구하고 개발 해 왔다. 곽 회장이 반도체 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7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. 그는 "미국 모토롤라가 한국지사를 설립할 당시 엔지니어로 입사했다"며 "미국 파견 엔지니어를 모집한다 는 광고를 보고 단지 미국 에 가고 싶은 마음에 반도체회사인 줄도 모르고 지원했다"고 말했다.
곽 회장은 모토롤라 입사 후 13년간 근무하며 최고 기술자로 인정받았다. 반도 체 장비 제조책임자로 근무 하며 기술을 쌓은 그는 향 후 반도체 장비 분야가 유 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. 전자계산기와 라디오 등 가 전제품에 반도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, 컬러TV가 개발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. 바야흐로 `반도체 혁명`이 일어 나던 시기였다.
1980년 곽 회장은 퇴직금과 가족 유산을 자본금으로 한미금형을 설립했다. 당시 국내 상황은 반도체와 관련 된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 할 정도로 열악했다. 불모 지와도 같은 환경이었지만 곽 회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`반도체 장비 국산화 의 초석을 다지겠다`는 사 명감으로 기업가정신을 발 휘해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었다.
하지만 사업은 시작부터 고 난의 연속이었다. 신생 기 업이라는 이유로 고객들에게 외면 받기 일쑤였고 반도 체 경기마저 위축됐다. 창업에 동참했던 투자자들도 잇달아 등을 돌렸다.
살 길은 해외에 있었다. 기술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. 곽 회장은 해외 전시회를 쫓아다니며 죽기 살기로 영 업에 나섰다. 그렇게 전시 회를 돌아다니며 하나둘 계약을 따내기 시작했다.
한미반도체가 2000년대 초반 개발된 `소잉&플레이스 먼트(Sawing & Placement)` 는 기존에 여러 단계로 나 누어졌던 절단, 세정, 건 조, 검사, 선별, 적재 생산 공정을 한 장비에서 가능하게 함으로써 공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. `소잉&플레이스먼트`는 출시 이후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열광 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. 현 재도 80%가 넘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압도 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.
곽 회장은 "한미반도체가 만든 장비들이 `모바일`로 대변되는 반도체 혁명도 앞 장서서 주도하고 있다"고 말했다. 실제로 한미반도체 는 30년 넘게 쌓아 온 기술 노하우와 인프라스트럭처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시장에 맞춰 반도체 고객이 필요로 하는 핵심 장비들을 개발ㆍ공급하고 있다. 최근 개발 한 `플립 칩 본더(Flip Chip Bonder)` 장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와 속도를 자랑한다. 이 장비는 칩 적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존 칩보다 통신 속도가 몇 배 높은 칩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.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할 때 반응 속도가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것 은 플립 칩 본더에 의해 가 능해진 현상이다.
오늘날 한미반도체는 반도 체 장비 분야에서 세계 일 류 회사로 꼽힌다. 반도체 제조 후공정으로 불리는 ` 조립ㆍ패키징 공정`을 소화 할 수 있는 장비 50가지 이 상을 개발해 전 세계에 공 급하고 있다. 반도체 리서치기관인 VLSI가 실시한 장 비평가등급에서 `5스타`상을 수상한 국내 유일 업체 다.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.
기업은행은 1983년 유망중 소기업 지정을 시작으로 한미반도체와 30년 인연을 어왔다. 2007년 한미반도체를 `기업인 명예의 전당`에 헌정해 곽 회장의 기업가정 신을 기리고 있다.
■ 곽노권 회장 "일감 없어 도 늘 1년 버틸 여력 비축"
"일등 연구가 일류기술을 만든다."
곽노권 회장은 한미반도체 성공 비결로 `기술력`을 꼽 는다. 곽 회장은 기술개발 에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인 다. 창업 당시부터 연구전담팀을 꾸렸고 창업 초기인 1986년 연구소를 세웠다. 지난해 말 기준 직원 540명 중 3분의 1인 180명이 연구 개발(R&D) 인력이다.
곽 회장은 "모름지기 기업 이란 크나 작으나 연구개발 의 밑바탕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"며 "기업은 개발과 같이 간다"고 말했다.
곽 회장이 꼽는 또 다른 성 공 비결은 고객 중심 마인드다. 반도체 장비사업은 고객 요구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주문생산 사업이다. 한미반도체는 견적 단계에 서부터 설계, 생산, 납품 후 사후관리 단계에 이르기 까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최선을 다한다. 곽 회 장은 "회사 이익도 중요하고 장비를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은 고객사가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장비 개발 초 기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"이라며 "우리 장비를 구매하는 고객사는 경쟁사 제 품을 쓰는 회사보다 반드시 더 많은 이익이 나야 한 다"고 강조했다.
곽 회장은 이 같은 고객 중심주의가 회사 경쟁력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했다. 한미반도체를 신뢰하는 유수 반도체 업체들이 신제 품 개발에 앞서 장비 개발을 의뢰하고, 고객사 의뢰 에 응해 신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각종 신기술을 경쟁사보다 먼저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.
그는 "1등 하는 회사와 거래하다 보니 반도체 관련 정보를 먼저 접할 수 있고 R&D도 선제적으로 할 수 있 다"며 "이를 통해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나아가 단순히 장비를 파는 회사가 아닌 기술을 파는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"고 말했다.
극심한 반도체 경기 변동에 도 큰 위기 없이 회사를 경 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`유비무환` 전략이다. 반도체 경기가 호황일 때는 불황을 준비하고, 불황일 때는 호 황을 준비하는 식이다. 곽 회장은 "일감이 하나도 없어도 최소 1년은 버틸 수 있을 정도 여력은 늘 비축 하고 있다"며 "주력 제품인 `소잉&플레이스먼트`도 2000년대 초반 불황 때 과 감하게 투자해 개발한 제 품"이라고 말했다. 곽 회장 은 "태양광과 LED 경기가 좋아진다는 전제 아래 관련 장비를 개발 중"이라며 "내년에 태양광ㆍLED 분야 투 자를 대폭 늘릴 것"이라고 덧붙였다.
[기획취재팀 = 최용성 차장 (팀장) / 홍종성 기자 / 노 현 기자 / 박준형 기자 / 정순우 기자] 매일경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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